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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 천양희

by melody11 2021. 5. 4.

외로워서 밥을 많이 먹는다던 너에게

권태로워 잠을 많이 잔다던 너에게

슬퍼서 많이 운다던 너에게

나는 쓴다

궁지에 몰린 마음을 밥처럼 씹어라

어차피 삶은 너가 소화해야 할 것이니까

 

 

궁지에 몰린 마음은, 갈 곳 없이 벽에 꽉 막힌 마음은 잘 익힌 밥이라기 보다는 딱딱하기 그지없는 생 쌀 같은데. 언제까지고 씹고 씹다보면, 절대 넘어가지 않을 것만 같던 것도 나도 모르게 소화되고 있으려나.

며칠 전 스님과 함께 식사를 하다 좋은 말씀을 들었다. 좋은 변화는 나도 모르게 슬금슬금 찾아오는 것이라고. 지나고 나서 그래도 내가 많이 컸네, 하는 것이 좋은 성장이라고.

외롭고 권태롭고 슬플 때는, 더 이상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마음이 꽉 막혔을 때에는, 멈춰서서 뒤를 돌아봐도 괜찮겠지. 감정이 수렴하고 뭉치다가 울음으로 터질 때, 눈물로 앞이 막막하지만 잠깐 돌아보면 어느새 나름대로 먼 길을 걸어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때로 열중하고 때로 지리했던 지난 시간들은 그래도 무언가의 꽃봉오리를 틔워 내느라 힘겨웠던 것이다. 잉태와 탄생의 아픔은 슬픔이고 때로는 그 의미를 알지 못하는 무지함으로 허무로까지 이어지지만, 계절의 변화는 숙명이다. 어차피 삶은 주어졌고 소화를 해 내야 하는 것이다.

괜찮다, 잘 하고 있다. 그저 할 수 있는 만큼 씹고 소화해내고 살아내면 된다.